맛의 깊이는 맛의 역사와 비례한다. 최대 100년 이상 꾸준히 소비자에게 사랑받는 식당의 비결도 세월이 빚어낸 맛에 있다. 손님들의 발길이 끊일 날 없는 오래된 한식당들의 맛과 역사는 어떤 모습일까.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식당은 종로구 견지동에 있는 ‘이문설농탕’이다. 이곳은 1904년에 개업한 서울시 요식업 허가 1호점이다. 손기정·김두한·박헌영 등 단골손님들의 이름이 지난 세월을 증명해 준다. 한 시대를 이어가는 이문설농탕의 비결은 묽은 국물이다. 처음 이문설농탕을 방문한 손님에게는 맛이 싱거울 수 있으나 그 속에는 17시간 동안 사골을 우려낸 정성이 녹아 있다. 설렁탕 한 그릇은 7000원, 특 사이즈가 9000원이다.
1926년 문을 연 형제추어탕이 2위다. 원래 서울식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갈지 않고 통째로 넣어 추탕이라고 부른다. 제대로 된 추탕을 찾아보기 힘든 요즘 형제추어탕은 그 명맥을 잇는 식당 중 하나로, 추어탕과 추탕을 모두 제공한다. 추탕 국물은 소 내장으로 맛을 냈다. 1인 기준 추탕이 1만1000원, 추어탕은 1만 원이다.
1904년 문 연 이문설농탕 ‘최고령’
서울식 추탕 전문점 용금옥이 3위다. 1932년 개업 당시 용금옥은 무교동에 자리하고 있었지만 1961년 중구 다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청계천이 복원된 이후 용금옥을 찾는 발길이 더욱 늘어났다. 이곳은 광복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시대와 인생을 논하는 토론의 장으로 젊은이들의 발길을 모았고 돈이 없는 손님에게 무료로 음식을 제공하기도 했던 이전 안주인의 인심으로 또 한 번 많은 사랑을 받았다. 추탕은 8000원이며 매월 2, 4주 일요일은 휴무다.
사골 뼈가 아닌 꼬리뼈만으로 끓인 육수는 아무리 끓여도 흰 빛이 나지 않는다. 1932년에 개업한 은호식당(4위)의 묽은 국물 색은 사골 국물에 익숙해진 손님들의 의심을 사기 쉽다. 하지만 은호식당의 국물은 최상의 꼬리곰탕을 제공하려는 식당의 욕심이다. 식사 이후에 제공되는 국수와 새 육수, 뼈마디를 단위로 잘라진 꼬리뼈도 은호식당만의 특징이다. 가격은 꼬리곰탕이 1만5000원, 도가니탕이 1만2000원이다.
형제추어탕·용금옥과 함께 서울의 3대 추어탕집으로 불리는 5위 곰보추탕은 국산 미꾸라지만 사용한다. 또 뼈가 부드러워 갈지 않은 미꾸라지를 즐기기에 더 좋다. 추탕은 1만2000원, 따로추탕은 1만3000원이다.
이 밖에 해장국을 전문으로 하는 청진옥(6위, 1937년), 곰탕과 설렁탕이 유명한 하동관(7위, 1939년)과 옥천옥(9위, 1941년), 냉면이 일품인 한일관(8위, 1939년)과 우래옥(10위, 1946년) 등이 서울의 오래된 한식당으로 손꼽혔다.
한편 서울은 전국을 기준으로 ‘장수 한식당’이 가장 많은 지역인 것으로 나타났다. 개업 연도순 100개의 식당 중 서울에 있는 식당이 28곳이었고, 동별로 따지면 서소문동이 4곳(잼배옥·강서면옥·고려삼계탕·진주회관)으로 가장 많았다.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한식당 10’은 농림수산식품부가 50년 이상 운영하고 있는 한식당 100곳을 소개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책자에서 서울지역의 한식당을 추린 것이다. 책에 실리는 것을 반대한 식당은 소개하지 않았고 운영한 지 50년이 안 됐지만 전통 맛집으로 꼽을 수 있는 4곳(1963~1967년 개업)을 포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