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만원의 행복'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단돈 1만원으로 생활한 두 명의 스타 중 잔액이 많이 남은 사람이 우승하는 내용으로, 알뜰한 습관을 일러주고 1만원의 소중함을 깨닫게 했다. 물가상승률을 생각하면 당시 1만원과 현재 1만원은 차이가 크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1만원이면 두 명이 식사하는 데 문제없었지만, 요즘은 한 끼 식사를 하기도 어렵고 커피나 디저트까지 먹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아마 지금 1만원으로 일주일을 버티라는 미션을 준다면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달 여성동아에서 1만원으로 특별한 음식을 먹고, 차와 디저트까지 해결하라는 미션을 받았다. 처음에는 그리 어렵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막상 계산을 해보니 쉬운 미션이 아니었다.
분식, 백반 말고 특별한 음식이라? 폼 나는 일품요리를 값싸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머릿속을 스치고 간 것이 홍대에 위치한 G·B(02-333-6906)의 굴라시 수프다. 골목 안쪽에 위치하지만 이미 맛집 블로거들 사이에선 꽤 유명한 곳. 맛있는데다 리필까지 해줘 주머니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더없이 인기다. 굴라시 수프는 쇠고기와 감자, 당근 등의 재료를 넣고 파프리카나 고추로 매운맛을 내 진득하게 푹 끓인 음식.'크네들릭'이라 불리는 밀가루 빵과 함께 먹는 헝가리 대표 가정식 요리로 한국의 육개장, 태국의 톰얌쿵과 비견할 만한 개운한 맛이다. 체코에서 유학 중이던 주인장 부부는 굴라시 수프 맛에 반해 2년 전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음식점을 오픈하고,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도록 저렴한 가격에 음식을 선보였다.
이태원만 하더라도 제3세계 음식은 가격이 비싼 편이다. 그럼에도 이곳에선 굴라시 수프 단품은 2천원, 굴라시 수프+ 빵+밥+커피 세트 4천원, 샐러드를 추가하면 5천5백원의 착한 가격에 맛볼 수 있다. 그렇다면 맛이 없지 않을까? 토마토로 맛을 낸 진한 국물에 깍둑썰기한 감자와 당근, 푹 삶은 쇠고기를 함께 끓여 깊은 맛이 난다. 직접 구운 빵은 버터를 살짝 발라 수프에 찍어 먹으면 good! 하얀 쌀밥과도 환상궁합이다. 목감기 기운이 있어 따뜻한 국물이 먹고 싶을 때, 과음으로 인해 속이 쓰릴 때 굴라시 수프 한 그릇이면 보약이 따로 없다. 수프 한 그릇으로 속이 든든해졌다면 향긋한 커피향에 후각을 맡겨보자.
홍대 입구에 위치한 커피집 에스파냐(02-335-1606)는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매장 곳곳에 스패니시 감성과 콜롬비아의 풍미가 느껴진다. 커피 한 잔 값이 밥값과 맞먹는 요즘 시대에 1천9백원이라는 가격에 아메리카노를 맛볼 수 있다. 커피 고유의 맛이 살아 있는 풀시티 로스팅을 좋아한다면 이곳 커피를 강추한다. 테이블은 단 한 개라 테이크아웃족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9회 이용 시 커피 한 잔 무료, 헌 소설책 2권을 기부하면 커피 한 잔을 공짜로 제공하는 서비스도 있다. 커피를 손에 들었으니 이제는 디저트를 고를 차례다.
고소한 풍미에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 그냥고로케(02-323-2745)를 추천한다. 빵가루로 맛을 낸 텁텁한 맛이 아닌, 으깬 감자를 넣어 진짜 고로케다운 맛이다. 토실토실 속이 꽉 찬 고로케는 따뜻할 때 바로 먹어야 제맛! 한 개 1천~2천원대로 가격 또한 착하다. 살사케첩, 와사비마요네즈, 허니머스터드, 돈가스소스 중 입맛에 맞는 것을 골라 뿌려 먹으면 된다. 핫도그와 호주식 미트파이를 판매하는 밥스바비(02-6405-7959) 역시 디저트로 강추! 푸짐한 핫도그와 바삭하고 부드러운 파이는 나의 식욕을 자극하는 맛이다. 굴라시 수프 A세트 4천원+아메리카노 1천9백원+고로케 1천원+애플파이 2천7백원. 1만원이 넘지 않은 돈으로 해결한 배부른 호사였다. '이보다 더 경제적이면서 특별한 코스가 있을까?'라고 뿌듯해하며 홍대 길거리에서 자신있게 '미션 성공'을 외쳐본다.
1 커피집 에스파냐 아메리카노 "로스팅한 신선한 커피라 맛이 부드러워요.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 향도 매력적이고요!"
2 밥스바비 애플파이 "차게 먹는 파이지만 살짝 오븐에 구웠다가 먹으면 겉은 따뜻하고 속은 차가워 더욱 맛있어요. 코를
찌르는 시나몬 향, 아삭한 사과, 건포도가 어우러진 달콤한 디저트에요."
3 G·B 굴라시 수프 "매콤한 맛과 달콤한 토마토 페이스트의 맛, 월계수 향이 입안 가득 감동을 줘요. 맛이 개운해 속이 느끼할 때 먹으면 좋아요."
4 그냥고로케 매콤고로케 "청양고추가 들어간 매콤한 맛이 인상적이에요. 부드럽게 으깬 감자와 바삭한 튀김옷이 전하는 고소한 맛이 일품이에요."
홍석천씨는...
95년 KBS 대학개그제로 데뷔, 각종 시트콤과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방송인이자 이태원 마이타이를 비롯해 마이첼시, 마이차이나 등을 성공시킨 레스토랑 오너다. 미식가로 소문난 그는 전문적인 식견으로 맛은 물론 서비스, 인테리어, 분위기가 좋은 베스트 맛집을 매달 소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