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사 검법이 아니다/바다 속/물 흐르듯 휘두르는/저 날렵한 몸놀림/은빛을 번쩍이며/날아 다니는/눈부신 보검//막장 같은 심해/오래, 오래 숨 막혀/몸을 비틀며 파도치다가/아예 은백의 한 자루 칼이 되어/쉭쉭 눈앞을 열어가는/그대’ <홍일표의 ‘갈치’에서> 갈치는 긴 칼이다. 칼 ‘도(刀)’자가 들어가는 ‘도어(刀魚)’다. 도(刀)는 ‘외날 칼’이고, 검(劍)은 ‘양날 칼’이다. 검도(劍道)는 바로 양손으로 잡는 ‘도(刀)’의 스포츠다. 한 손으로 잡는 펜싱과 다르다. 펜싱은 스피드가 빠르지만 가볍고, 검도는 속도는 느리지만 예리하고 둔중하다. 펜싱이 찌르기에 능하다면, 검도는 치고 찌르고 베는 데 고루 능하다. 일본에서 갈치는 ‘다치우오(太刀魚)’이다. 역시 ‘칼(太刀)’이 들어간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서 ‘모양이 긴 칼과 같다. 입에는 단단한 이가 촘촘하게 늘어서 있다. 물리면 독이 있다. 맛이 달다’고 기록했다. 자산어보엔 허리띠 같다고 해서 ‘군대어(裙帶魚)’라고도 했다. 갈치(葛侈)는 ‘칡넝쿨처럼 길어서’ 붙은 이름이다. 칡이든, 칼이든 그 생김새를 나타낸 것은 똑같다. 갈치이기도 하고 ‘칼치’이기도 하다. 갈치는 급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머리를 세운 상태로 헤엄친다. 쉴 때도 서서 쉰다. ‘칼잠(갈치잠)을 잔다’는 말은 바로 ‘서서 자는 갈치의 습성’에서 나온 말이다. 긴 칼이 바닷속에 꽂혀 있는 것 같다. 바닷속에서 머리를 위쪽으로 하고 있다. 마치 사람이 서 있는 것 같다. 다리가 얼마나 아플까. 간혹 급한 상황이 벌어지면 W자로 헤엄치기도 한다. 제주 은갈치는 낚시로 잡는다. 갈치는 비늘이 없다. 대신 몸통이 은빛을 띠는 흰색가루 같은 것으로 덮여있다. 구아닌 성분이다. 독이 있다. 갈치를 회로 먹을 땐 바로 이 은빛 나는 구아닌을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갈치의 은빛가루 옷은 립스틱광택재료로 흔히 쓰인다. 모조진주 재료로도 인기다. 갈치는 살아 있을 땐 은백색이다. 하지만 몸통에 상처가 나면 한순간에 은빛광택이 사라진다. 그물로 잡으면 상처투성이의 먹갈치가 된다. 그래서 낚시로 은갈치를 낚는다. 갈치는 성질이 불같다. 핏대다. 낚시로 낚아 올린 것들도 제 성질에 못 이겨 금세 죽는다. 죽으면 은회색이 된다. 갈치는 낚시에 걸려 올라오면서, 한두 번 꿈틀댈 때가 황홀하다. 달밤에 낚싯바늘에 걸려 번들거리는 갈치들. 동트는 아침햇살에 번득이는 은빛 몸통. 살아보겠다고 온 힘을 다해 요동치는 처절한 몸짓. 그러다가 갑자기 축 늘어져버리는 ‘은빛 발광체’. 갈치는 뭐든 잘 먹는다. 바다의 돼지다. 닥치는 대로 잡아먹는다. 심지어 제 꼬리까지 잘라서 먹는다. 오죽하면 갈치꼬리를 잘라 갈치낚시 미끼로 쓸까.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는 거나 똑같다. ‘갈치가 갈치꼬리를 문다’는 말도 서로 꼬리까지 잘라 먹을 정도로 식성이 좋은 데서 나왔다. 제주서귀포 밤바다엔 갈치배들이 불을 밝히고 있다. 수평선에 한 줄로 죽 늘어서 있다. 아련한 불빛이 가슴을 적신다. 제주도는 어디 가나 갈칫국 천지다. 제주갈칫국은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아 맑다. 갈치를 탕탕 토막 내 소금으로 간을 맞추고, 어린 배추, 단호박, 마늘, 풋고추를 넣어 푹 끓인다. 술꾼들 속 푸는 데 으뜸이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고, 몸이 훈훈해진다. 갈치는 서민음식이다. 갈치회는 바닷가가 아니면 맛보기 힘들다. 서울에서는 갈치조림 갈치찌개 갈치구이 갈치젓 등이 보통이다. 갈치조림은 토막갈치에 무를 양념해 고춧가루로 간을 한 뒤 자글자글 조려서 먹는다. 서울남대문시장 숭례문수입상가의 갈치조림골목이 유명하다. 갈치조림식당이 10여 군데 몰려 있다. 길게는 40여 년에서부터 짧게는 20여 년까지 된 오래된 집들이다. 갈치는 살이 많은 수입품은 맛이 싱겁다. 국산이 작지만 깊은 맛이 있다. 갈치는 길이보다 폭이 넓어야 한다. 구이나 조림은 넓은 것이 좋다. 젓갈은 풀치로 담근다. 풀치는 갈치 새끼다. 몸통과 내장을 나눠서 따로따로 젓갈을 담근다. 요즘 갈치 값이 금값이다. 잘 잡히지 않는다. 어획량이 예년의 60∼70%에 머무르고 있다. 바닷물이 따뜻해진 게 그 이유다. 갈치 아귀 대게 꽃게 도루묵 참조기 청어 가자미 넙치 홍어 서대 붕장어 등의 서식지가 점점 북상하고 있다. 갈치 고등어 삼치 같은 생선은 떼 지어 다닌다. 달이 밝으면 흩어져 바다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달 밝은 음력 14∼18일엔 그물에 잘 걸리지 않는다. 먼 바다에 나가는 큰 배들도 이때는 선박수리 등을 하며 쉰다. 보름달이 뜰 무렵이면 값이 오른다. 갈치는 음력 보름 전후를 피해서 시장에 가야 값이 싸다. 낙지 주꾸미 꽃게 등은 초승달 보름달(1, 15일)이 뜰 때, 즉 썰물과 밀물의 차이가 가장 클 때 가장 잘 잡힌다. 새우 먹으러 연안으로 밀려오기 때문이다. 요즘 아이들은 갈치 잔가시 발라낼 줄을 모른다. 대학생도 그냥 젓가락으로 아무 데나 갈치살점을 찍어낸다. 성질이 급해서 아예 손조차 안 대는 아이들도 있다. 귀찮아서 안 먹는 것이다. ‘아내는 기다란 참빗을 도마 위에 놓고 도막도막 자른다. 아이는 빗살무늬 사이에 낀 비린 공기를 발라 먹는다. 아이의 목에 빗살 하나가 걸려 푸드덕거린다. 아이가 캑캑거리며 운다.’ <김기택의 ‘갈치’에서> 갈치 중의 갈치는 ‘산갈치’이다. 산갈치는 ‘갈치의 용’이다. 보기만 해도 신비롭고 화사하다. 연분홍지느러미는 황제의 용포를 보는 듯 황홀하다. 길이가 무려 9m나 되는 것도 있다. 국내에선 4∼5m 길이의 산갈치가 종종 나타난다. 바다 깊은 곳에서 살기 때문에 평소엔 보기 힘들다. 사람들은 ‘한 달 중 15일은 바닷속에서 살고, 15일은 산으로 날아가 그곳에서 산다’고 믿는다. 신령스럽게 여겨 잡지도 않는다. 산과 바다를 날아다니는 전설의 물고기인 것이다. 산갈치는 보통 땐 보기 힘들다. 바닷물이 심하게 뒤집혀서, 수면 위로 등 떠밀려 오를 때나 볼 수 있다. 대부분 죽어서 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