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사케 한잔에 풀리는 마음겨울에 먹으면 좋을 듯한 음식들로 철저히 주관적이며 이기적인 취향대로 소개할까 한다. 아, 그리고 혹시 그 남자에게 소개하고 싶은 제철 음식이 있다면 아래 이메일로 연락 주셔도 좋다. 괜찮다 싶으면 그 남자와 함께 가서 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영광을 드리겠다. (인터랙티브 칼럼니스트 그 남자)
스산한 마음에 겨울바람 불고 자라목으로 거리를 걷다 보면 문득, 생각난다. 따뜻한 사케 한잔에 뜨끈한 우동국물. 그래서인지 이젠 어느 거리에서나 오뎅바들과 사케바 찾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고 너나 할 것 없이 그렇게 스산하시어서 더욱 장사가 잘되는 요즘이다.
가로수 길 걷다가 찾아들어간 쿠노요(KUNOYO)의 외관은 여느 이자카야와 다를 바가 없다. 딱 신주쿠 뒷골목 선술집 풍경 그대로다. 늘어세운 사케병들과 여닫이 유리문 안으론 오뎅 국물이 끓고 있고 혼자 혹은 서넛이 두서없이 앉아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워낙 추운 날씨여서일까? 한참 술이 당기는 시간임에도 비어 있는 테이블이 있어 혹여 그렇고 그런 프랜차이즈 이자카야는 아닐까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따뜻한 사케를 주문하자마자 스타일 좋은 남자 한 분이 득달같이 달려나와 만류한다.
“따뜻한 사케는 좋은 사케가 아닙니다. 사케를 데우면 향과 맛을 잃어요. 추우시더라도 이걸 한 번 드셔보세요” 하며 ‘야사이이화메(묵주)’를 권한다. 워낙 강력한 권유라 따뜻한 사케를 포기하고 이분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남자(쿠노요의 사장 박호준 선생)는 정식으로 교육받는 기키사케시(사케 소믈리에?)는 아니지만 실전적으로(사케를 많이 마셨다는 말이다) 사케 전문가가 된 사람으로 사케에 관련해서는 정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어서 나온 안주는 광어를 해삼 내장으로 무친 ‘광어와다회’, 참깨소스에 참치를 버무린 ‘가츠오다다키’ 그리고 새우깡이었다. 광어를 해삼 내장으로 무친다는 발상도 좋고, 직접 개발했다는 참깨소스도 훌륭했지만 무엇보다 맛도 재미도 있었던 것은 ‘새우깡’이었다. 신선한 보리새우를 튀김옷에 무쳐(절대 튀김옷을 바르는 것이 아니다) 살짝 튀겨내었는데 바삭하면서 새우의 생살이 살아 있어 자꾸만 손이 갈 수 밖에 없게 만들어냈다.
그렇게 마음 스산해 찾아들어간 곳에서 만난 따뜻한 음식들과 멋진 술은 그 남자의 몸도 마음도 풀리게 만들어 ‘야사이이화메’ 두 병과 라멘까지 비우게 만들었다.
이런저런 빈티지, 앤티크에도 관심이 많은 이 실전적 기키사케시의 컬렉션이 구석구석 자기 자리에서 빛나고 있고 안주가 나올 때마다 따라 나와 소스와 재료를 설명하는 셰프(아마도 그 남자의 그 여자가 아닐까 싶은데), 덕분에 몇 마디 주고받으면서 마음이 더욱 따뜻해지는 것도 이 집의 특징이다.
주가도 떨어지고, 아파트 값도 떨어지고, 직장도 떨어질지 모른다는 마음에 잔뜩 얼어붙은 마음들이 스산한 겨울바람을 피해 가기 딱 좋은 곳이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