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할머니께서 조선호박을 많이 주셨길래 애호박 새우젓 찌개를 끓이다가
찌개 한 대접으로 감격에 겨웠던 자취 초기 밥상이 생각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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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간을 보거나 밥솥의 취사버튼을 누르는 등의 간단한 주방일이었지만
어쨌거나 엄마를 도와 주방에 들락거리는 것을 좋아했기에
안해서 그렇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그리 어렵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역시 혼자 사는 사람이 제대로 된 밥상을 차려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문제였다.
주방일이 손에 익지 않은 상황에서 도구까지 변변치 않으니 뭔가 하나 하려면 너무 오래 걸려서
김치에 참치통조림, 아니면 달걀...김 같은 간단한 반찬만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밑반찬 말고 만들어서 이삼일 먹을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다가 국물이 떠올랐다.
어느 식당이든 찌개가 맛있는 곳은 김치만 맛있어도 장사가 잘 되는 법이고
학교 급식이 맛 없는 날 무조건 국에 밥을 말아서 먹으면 그런대로 먹어지던 기억이 있으니
넉넉히 끓여 놓으면 별 다른 찬 없이도 밥다운 밥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엄마가 알려주신대로 대파와 고추, 멸치다시마육수를 냉동해놓고
필요할 때 두어가지 식재료만 추가해서 만드는 국이나 찌개 한 대접의 위력은 대단했다.
특히 추운 날 마른찬으로 찬밥 먹기가 힘겨운 때는 별로 들어간 재료도 없는 멀금한 국 한 그릇에 밥이 잘 넘어갔다.
밥과 국, 김치.. 세가지가 오르니 뭔가 갖추어진 밥상을 차려낸 것 같았고,
밖에서 일에 치인채로 썰렁한 집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따끈한 국물과 함께 녹여낼 수 있었다.
국이나 찌개 한 솥을 잘 끓여놓고 나면 이틀은 걱정이 없었다.
국물 신봉자가 되어 열심히 끓였더니 요리에 재미가 붙었다.
멸치다시마육수와 기본 양념에만 충실해가며 내맘대로 국과 찌개를 끓이다보면
간혹 음식같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괴물질 정도는 아니었으니 먹어보고 다음에 고치면 되었다.
자취 시작하고 1년 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5년을 계속 끓이고 고치는 동안 나만의 레시피도 생겼다.
재료를 보면 과정과 완성된 음식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제법 빨라진 손이 때로는 생각보다 먼저 음식을 후닥딱 만들어 낼 수 있게 된 것...
무엇보다도 정직한 과정이 있으면 그 과정이 결과가 되고 결과는 다시 과정이 되어
언젠가는 정직한 결과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 모두가 국물 한 대접의 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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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물 한 대접의 위력~ 애호박 새우젓 찌개 (1~2인분)
재료 둥근 애호박 1/4개(길다란 애호박 1/2개-150g), 양파 1/8개(20g), 홍고추 1/2개,
청고추&청양고추 1/2개, 대파 1/6대, 멸치다시마육수 1컵(200ml), 양념장, 새우젓
맑은 찌개 양념장 새우젓 2작은술, 다진파 2큰술, 다진마늘 1/2큰술 빨간 찌개 양념장 새우젓 1/2큰술, 간장 1/2큰술, 고춧가루 1/2큰술, 다진파 2큰술, 다진마늘 1/2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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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맑은 찌개를 만들 때에는 청양고추를 넣는게 은근한 칼칼함이 있어서 좋고,
빨간 찌개를 만들때에는 청고추를 넣는게 너무 맵지 않아서 좋드라구요~
취향껏 하세요...^^
+ 국물을 반 컵 정도 더 잡고 두부 1/4모를 넣어 만드셔도 좋습니다~
취향에 맞는 양념장을 택해 만든다.
둥근 애호박은 부채꼴 모양으로 썬다. (길다란 녀석일 경우 반달썰기 하세요~^^)
양파는 채 썰고 고추와 대파는 어슷썰어 준비한다.
냄비에 양파와 호박을 담고 양념장을 넣어 무친다음 멸치다시마육수를 조심스레 부어...
중간중간 생기는 거품은 걷어내가며 끓인다.
양파와 호박이 익으면 대파와 고추를 넣고 모자라는 간은 새우젓으로 해서 낸다.
맑게 끓인 찌개... 시원하면서도 깔끔 담백한 맛~
빨간 양념장으로 끓인 찌개~ 역시 시원하면서도 고춧가루와 간장이 들어가서 좀 더 풍부한 맛...^^
이렇게... 오늘도 국물 한 대접의 위력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ㅎㅎㅎ |